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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이건희 회장이 25일 서울 삼성병원에서 별세했다는 소식인데요. 이건희 회장은 2014년 5월 심근경색증으로 쓰러진 바 있죠. 삼성 측에서는 이건희 회장의 별세 소식을 알리며 고인과 유가족의 뜻에 따라 장례는 가족장으로 간소하게 치를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오늘은 이건희 회장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이건희 회장은 1942년 1월 9일 생으로 향년 78세입니다. 삼성그룹 창업주인 이병철 전 회장의 3남5녀 중 셋째 아들로,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대구에서 출생하였으며 첫째 형 이맹희 씨와 둘째 형 이창희 씨를 제치고 삼성그룹의 후계자가 되어 삼성전자 회장 겸 삼성그룹의 총수로 한국 최고의 부자라고 할 수 있죠.

여동생은 신세계그룹 회장인 이명희 씨이며, 홍라희 씨와 결혼 후 슬하에는 첫째 아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둘째 딸 이부진 호텔신라 대표이사 사장, 셋째 딸 이서현 삼성 복지재단 이사장, 넷째 딸 故이윤형 씨가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말수가 적고 혼자 사색하는 시간이 길었다고 하는데요. 부산사범부속국민학교를 다녔고 서울사대부고로 진학하였습니다. 사대부고에서는 레슬링부 활동도 했으며, 이후 연세대학교 상학과에 진학하였다가 자퇴 후 와세다대학 상학부로 입학 후 졸업하였습니다.

대학 졸업 후 유학 생활을 하였고, 1966년 동양방송에 입사하여 1968년에는 동양방송,중앙일보의 이사가 되었으며 1978년에는 삼성물산 주식회사 부회장에 등극하였고 1980년 중앙일보의 이사를 거치고 1987년 삼성그룹의 회장이 되었습니다. 셋째 아들인 이건희 씨가 회사를 물려받은 데에는 1969년 형들인 이맹희, 이창희 씨가 아버지를 청와대에 고발하는 사건이 터진 이후 후계구도에서 쫓겨난 이유가 가장 크다고 합니다.

이건희 회장은 퇴근 후 사람들과 어울리기 보다는 기술 관련 서적을 읽거나 각종 기계를 분해, 조립하면서 연구를 했다고 합니다. 이때 어려운 문제가 발생하면 기술자들을 불러 가르침을 받았다고 하네요. 삼성 부회장 시절 주말에 집으로 초대한 일본 기술자만 해도 수백 명이라는 이야기를 한 적도 있죠.

회장이 된 후 삼성그룹 창업 50주년인 1988년에 삼성의 제2창업을 선언했습니다. 적극적인 혁신을 추구하기 시작하였고 신경영을 통하여 삼성전자를 세계 일류 기업으로 도약시키는데 성공했습니다. 이러한 혁신에는 일본 고문인 후쿠다에게서 받은 '후쿠다 보고서'가 큰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그가 삼성그룹을 이끄는 동안 여러 논란도 있었는데요. 대표적으로 삼성의 전 법무팀장이었던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비리에 대하여 양심 고백을 한 일이 있죠. 2008년 이로 인해서 이건희 회장의 차명계좌가 발견되고 천억 원대 세금 포탈 혐의가 적발되었고, 이 일로 인하여 이건희 회장은 모든 직책을 내려놓고 전격 퇴진하였으며, 이수빈 삼성생명 회장이 직책을 대신하였습니다. 증여세를 회피하여 자리를 물려주려 했다는 의심을 받은 이재용 최고 고객 책임자도 직위에서 물러났죠.

이 일에 대해서는 2009년 12월 정부에서 특별사면을 발표했습니다. 2011년 3월, 경영에서 물러난다는 발표를 철회하고 회장직에서 물러났던 23개월만에 삼성전자의 회장으로 복귀했습니다. 이후 2014년 이건희 회장은 심근경색으로 자택에서 쓰러졌고, 순천향대학교 서울병원으로 이송되어 심폐소생술 후 삼성서울병원에 입원했는데요.

이후 6년 반동안 입원을 하였고 주기적으로 사망설이 돌았습니다. 이건희 회장이 입원해있는 동안 삼성 경영권은 이재용 부회장에서 넘어간 것으로 보아도 무방한 상태였는데요. 입원해 있는 동안 자가호흡이 가능한 상태로 재활치료를 받는다고 알려져 있었고, 결국 25일 오늘 끝내 병상에서 일어나지 못한 채 별세했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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